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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모사] 06기 허진석 _2016-03-29 (故)송원 김영환 회장님 2주기 추모식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18-04-03
회장님,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졌습니다.
이 따뜻한 기운이 회장님의 인자하셨던 미소 같아 참 좋습니다.
회장님과 닮았다고 여기니 더 정겹게 느껴지고 더 좋아집니다.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신년회와 MT 때 뵙던 회장님을 이제는 이렇게 만나는 데에 익숙해져야겠지요.
송원김영환장학재단 회원들과 송원그룹 식구들, 가족들, 그리고 회장님을 기리는 분들이 모두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가슴 속에 하나씩 생각의 알갱이들을 품고서 모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회장님을 대학 2학년이던 1989년에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묘한 고량주 냄새와 함께였습니다.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 날도 회장님은 보는 사람까지 환하게 만드는, 광대뼈 부위까지 살이 당겨 올라가는 그 넉넉한 미소를 한시도 빠뜨리지 않고 계속 짓고 계셨습니다.
그날 장학회 선배 중 한 분은 그러셨습니다.
“장학증서 수여식 같은 건 없으니 긴장 풀어라. 맛있게 먹고 친구들 많이 알고 가면 되는 거다”라고.
숫기가 없던 저는 그날 조용히 앉아서 관찰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27년 전 일이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머리가 희끗하신 회장님과 정홍진 이사장님은 뿅망치를 들고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면서
분위기를 띄우셨습니다.
‘너희들끼리는 알고 지내고, 서로 돕거라’는 말씀을 나중에 종종 들었습니다.
신입생 환영회 때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몸소 애를 쓰신 것은 그것이 장학회원 우애의 첫 단추이자 기틀임을 아셨기 때문일 거라 감히 짐작해 봅니다.
그 깊은 배려를 나이를 한참이나 먹고서야 깨달았습니다.
회장님과 저는 고향이 같은 인연이 있습니다.
회장님이 사업을 일구실 즈음은 제가 경남 김해시 장유면이라는 시골에서 네 살배기로
엄마 품도 떠나지 못할 때였습니다. 장학회를 세우실 때는 제가 중학생이더군요.
그렇게 따로 가던 행로는 1989년에 연결됐고, 저는 오늘 회장님을 추모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회장님은 이렇게 사람들의 삶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송원그룹 회사들이 ‘공존 공영 공익’을 우선시 하는 철학 아래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비교적 근래에 알았습니다.
그 순간, 회장님이 사업을 하시는 이유에 대해 말씀을 하신 게 떠올랐습니다.
“장학금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내 일에서 실패를 하면 안 된다. 같은 이유로 나는 ‘깨끗한 이익’을 남겨야 한다.”
저는 회장님이 인생을 경영하시면서 공존 공영 공익의 원리를 현명하게 ‘이용’하셨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확고하게 실천하시면서 당신의 일과 삶과 사랑도 끌어올리셨다는 측면에서 그러합니다.
저는 회장님의 미소 짓지 않는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항상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내면에 공존 공영 공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저희는 이제 그런 회장님을 기림으로써 삶의 자양분과 동력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시는 회장님과 땅 위에 발을 딛고 있는 저희가 공존 공영하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회장님,
매년 3월 말이면 떡잎을 키우는 봄기운이 이렇게 완연해질 것입니다.
그 속에서 저희는 떡잎을 보호하셨던 회장님의 미소를 찾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그런 미소를 보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것입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송원 가족 여러분, 고맙습니다.

OB 회장 허진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