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추모사

774 1기 김문식 (故)송원 김영환 회장님 추모글 2014.05.23

사람 농사를 짓는 농부

 송원 회장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떠나셨다. 여든을 넘기셨으니 너무 일찍 가셨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크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셨기에 지금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회장님의 병세가 위중함을 안 것은 작년인 2013년 11월이었다. 회장님께서 장학회 OB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병세를 말씀해 주셨다. 도중에 눈물을 조금 보이셨고 함께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 동요가 있었다. 이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회장님과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8월에 나는 송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연말이 되었을 때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첫 모임이 이상했다. 장학생이라야 6~7명 정도가 모였고 으레 있을 법한 장학 증서 수여식이나 기념 촬영이 없었다. 모임에는 회장님과 정홍진 이사장님, 장학회 실무를 맡았던 윤성덕 대리가 있었고 서로를 소개하고 술잔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한 것이 전부였다. 송원김영확장학재단이 그 해에 출범했고 내가 장학회 1기생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참으로 소박한 모임이었지만 그날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당신이 어려울 때 주변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힘들게 공부했으므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 재단을 만들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므로 장학생들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말씀이셨다.

 장학 재단에서 신입 회원 환영회, 1박 2일 MT, 연말 송년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 중에서도 절정은 1박 2일 MT였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인근의 산을 오르는 코스였다. 이 때에는 회장님, 이사장님, 재단의 이사님들, 장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그야말로 한 가족이 되었다. 회장님께서 장학생들을 마음껏 포옹하고 뽀뽀 세계를 퍼부었던 것도 그때였다. 아, 술을 한잔하신 회장님의 홍조 띤 얼굴과 너털웃음, 내 자식들이라며 힘껏 껴안으시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시간을 되짚으면서 떠오르는 회장님의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정성을 기울여 가을의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일확천금의 꿈을 꾸지는 않는다. 씨 뿌린 대로 땀 흘린 대로 거두게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회장님은 사람 농사를 짓는 농부이셨고, 장학생은 회장님이 뿌린 씨앗이었다. 회장님은 장학생에게 서로 도우면서 살라는 말씀 외에는 요구하는 것이 없으셨다. 몇 년 전부터 장학생들이 조금씩 정성을 모아 장학금을 마련한 것은 회장님의 행동을 따라 해 보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회장님의 뜻일 것이다.

 회장님께서 장지를 단양의 백광소재로 정하신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백광소재는 회장님께서 오늘의 송원그룹을 일으키고 장학 재단을 설립하신 바탕이 된 곳이다. 농부는 농토를 버리면 살 수가 없기에 농토를 떠나는 법이 없다. 회장님을 장지로 모시던 날 백광소재 임직원들의 엄숙한 태도, 힘차게 돌아가던 공장의 모습,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묘소를 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농토를 떠나지 않는 농부의 고집을 보았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돌부처이다. 회장님은 말수가 무척 적은 분이다. 말수가 적기 때문일까? 어쩌다 하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게 되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효과는 있다. 회장님과 대화할 때에는 얼굴 표정이나 몸짓,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중요하다. 장학생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시고 술을 한잔하시면 몸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시기도 한다. 그렇지만 회장님의 얼굴을 뵈면 대부분은 부처님처럼 평온하다. 오랫동안 힘들게 일하고 수없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무언가 터득하신 것이 있는 것 같다.

 회장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금년인 2014년 2월 초였다. 얼굴에 잠깐 반가운 기운이 보였다가 이내 예전의 평온한 모습이 되셨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알기에 딱히 무어라 말씀드리기가 어려웠고 그저 침대 곁에 앉아서 회장님의 손을 움켜잡아 드렸다. 따뜻했다. 그리고 그냥 얼굴 표정으로,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을 느낄 뿐이었다.

 이제 회장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계신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이 회장님을 기억하는 한 회장님은 계속 살아 계실 것이다. 회장님은 젊어서 꿈꾸었던 일을 대부분 이루고 떠나셨다. 아마도 여한은 없으실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 원대한 계획이었지만 생전에 그렇게 이루신 것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회장님의 뜻을 이어받으려면 우리도 농부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회장님께서 남기신 업적을 씨앗으로 삼아 씨 뿌리고 정성 들여 가꾸면서 또 다른 수확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 송원 회장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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