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추모사

776 1기 최관 (故)송원 김영환 회장님 추모글 2014.05.23

큰 숲이 되고 푸른 산맥이 될 송원장학회

천붕(天崩),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란 이런것인가.

나의 사회적 아버님이셨던 김영환 회장님, 지금도 송원빌딩 5층으로 찾아가면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 주실 것 같은 김영환 회장님, 그런 당신을 그리며 난 지금 소나무 들판에 서 있다.

 송원(柗園) 김영환 회장님과의 연은 1983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는 과외가 금지되어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참 어려운 때였으므로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것 자체가 나 같은 시골 출신 고학생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이렇게 고맙게 장학생이 된 만큼 어떠한 의무도 다하리라 맘먹었는데, 그저 회장님께서는 소주잔을 같이하며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한 번 송원 장학생이 되면 졸업 때가지 어떠한 경우에도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설명에, 세상에 이런 데도 다 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복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며 감사할 따름이었다.

 매번 뵐 때마다 회장님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의례적인 말씀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 고생 많다”, “고기 많이 묵어라”,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니 장학생들끼리 사이 좋게 살아라”라는 말씀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짧은 세 마디의 한결 같은 말씀이 나에게 어른의 따듯함과 인생살이의 가르침으로 작용하고 있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며 그 말씀이 지닌 깊은 의미를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회장님은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들을 자식으로 여기고 품고 계셨던 것이었다. 여기에 무슨 논리가 필요하고 다른 군더더기 말이 필요할 것인가. 그렇다. 베푸는 사업가와 수혜자인 장학생의 만남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었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연을 이렇게까지 고양시킨 분이셨다. 그 품 안에서 동기, 후배들과의 정도 자연스럽게 형제의 정처럼 깊어지는 송원장학회가 성장하였던 것이다.

 송원장학회의 꽃은 매년 1박 2일로 떠나는 MT였다. 한 번 MT를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정이 들고 다음 MT가 기다려지는 것이 송원 MT였다. 매년 회장님은 빠짐없이 참석하여, 위 세대 이사님들과 인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셨다. 정홍진 이사장님은 물론이고 김종하 의장님과 같은 훌륭한 어르신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밤은 내 인생 최고의 한 장면이었다.

 1980년대 계룡산 MT, 오대산 MT 때에는 그렇게 많이 약주를 드시고도 다음 날 젊은 우리들과 함께 산행을 하시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1989년 유학을 떠날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승목 사장님을 소개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고, 귀국하여 교단에 설 때까지 회장님의 보살핌은 끝없이 이어졌다. 나처럼 회장님의 은덕에 힘입은 장학생은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1기 선배라는 명분으로 장학회 이사가 되어 매년 12월 차기 장학생 후보들을 면접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도 회장님은 어려운 처지의 학생을 좀 더 선발하려고 애쓰셨다. 돌아가시기 전 해까지도 더 많은 장학생을 뽑지 못해 내심 안타까워하셨고, 늘 예정 인원보다 한두 명이라도 더 장학생을 뽑아야 만족하시는 모습에서 성자의 일면을 느낀 것은 나뿐이었을까.

 회장님이 늘 말씀하시던 “더불어 살자”가 송원그룹의 경영 이념인 ‘공존, 공영, 공익’ 으로 드러나 있고, 이를 일생을 바쳐 일관되게 실천해 옴으로써 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인생 그 자체로 보여 주셨다. 이제 송원장학회는 30년 세월을 지나 성인이 되었고, 회장님의 정신과 마음을 숭모하고 계승할 장학생이 늘어만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김영환 회장님, 당신이 씨 뿌리고 가꾸어 온 송원장학회는 큰 숲이 되고 푸른 산맥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인자한 그 모습 그대로, 인생의 거목으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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